본문 바로가기

아티스트

정해창의 사진-특이한 지적배경을 가진 사진가

728x90
반응형

정해창의 사진2

2.특이한 지적배경을 가진 사진가

정해창은 한국의 사진가로서는 보기드문 지적 배경과 수준을 가진 사람이었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합방되기 직전인 1907년 3월 서울 종로4가에서 출생한 정해창은 자를 하연(何涎), 호를 유재(悠哉)라 했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그는 다른 사람보다 비교적 양질의 교육을 받을 기회가 많았다.
1922년 서울에서 보성중학을 수료하고 곧바로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외국어대학에서 독일어를 전공하고 졸업했다. 일본유학시절 어학을 공부하면서도 미술과 사진 등 시작예술에 많은 관심을 표명했던 그는 동경의 전단화회(川端畵會)에서 서양화를 공부하기도 했으며 동경예술사진학교 연구실에서 사진학을 연구하면서 사진을 시작했다.

 

사진의 추기시대, 기술적인 문제의 해결이 사진의 질을 결정하기도 했던 점을 감안한다면, 인화지 제조기술이나 특수인화법 등 화학에 관련된 사진의 문제를 연구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정해창이 사진가로서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일본에서 공부를 마친 후 정해창은 동양철학과 고고학을 연구하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갔다. 후일 그가 대학에서 동양미술사 교수로 재직했고, 동양 미술과 고고학의 권위자로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지적 배경 때문에 가능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독일어와 동양학을 연구하는 사이에 사진술을 습득한 것은 순전히 독학에 의한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가 남긴 사진을 살펴보면 그가 공부했던 동양미술의 영향을 깊히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다시 돌아온 정해창은 종로의 본가에 근거를 두고 사진창작에 몰두하게 된다.
그가 본격적인 사진작업을 시작할 무렵 우리나라에서는 상업성을 목적을 둔초기의 영업사진시대가 지나고 순수한 표현방법으로서의 예술사진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정해창이 자신의 전공과 별 관계가 없어보디는 사진작업에 매달린 것은 당시의 이러한 부누이기도 크게 작용했으리라도 믿어진다. 1929년 3월 정해창은 광화문에 있는 광화문빌딩2층에서 우리나라 사람으로서는 최초로 개인사진전람회를 개최했다. 당시 기록을 보면 관객들의 호응도가 상당히 높았고 언론들의 반응 또한 꽤 컸던 것같다. 그 이후로 정해창은 대구, 광주, 진주 등을 도는 지방순회전시를 비롯해서 1939년 화신백화점 화랑에서 열린 전람회에 이르기가지 4회의 개인 전람회를 열었으며, 초창기 우리나라 사진예술을 주도해 나갔다.

 

 

 

 

 

 

 

 

 

 

 

 

 

 

 

 

 

 

728x90
반응형